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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 마당] 마음은 언제나 30대

“우리 새 가게 이름을 ‘Forever 31’으로 지으면 어떨까?”   나보다 딱 10살이 많았던 사장님의 부인과 직원들이 오손도손 점심을 먹는 시간이었다. 사장님의 부인은 항상 거침없이 대화의 주도권을 이어나가는 분이었다. 그날도 우리는 그녀의 말에 추임새를 넣으며 30분의 점심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새로 오픈하는 의류 지점의 상호를 무엇으로 할 것인가가 화제였는데 곰곰이 생각하던 그녀가 내놓은 아이디어였다.   그 당시 31살로 막내였던  나는 그 얘기를 듣고 ‘굳이 서른 한살이 영원하다면 무엇이 좋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주변을 살펴보니 나 혼자만 공감을 못 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모두 40대 였던 동료 언니들은 미시족 고객이 대상인 만큼 그 이름이 좋다고 모두 맞장구를 치는 것이었다. 그러나 사장님의 마지막 결정 과정에서 미끄러졌는지 새로운 가게 상호는 ‘포에버 31’이 아닌 다른 것으로 결정됐다.   그로부터 15년이 지나 내가 40대 중반의 나이가 됐을 때 문득 동료 언니들의 격한 호응이 떠오르면서 과거 나의 서른한 살 때가 많이 그리워졌다. 사실 당시에는 올망졸망 연년생 아이들을 키우느라 내 30대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도대체 기억이 안 났다. 나는 주위 친구 가운데 가장 먼저 아이를 낳고 키웠다. 당시 독신주의를 외치며 자유로운 영혼으로 사는 친구들의 모습을 부러워하며 그렇게 의미 없이 10년의 세월이 지나간 줄만 알았다.   아이들에게 ‘어서 자라라’ 하며 시간이 달려가기만을 소망했던 나날들이었다. 그런데 세월은 비호처럼 날아가 어느덧 40대 중반이 되어 돌아보니 내게는 30대 시절이 인생의 전환점이 아니었나 싶었다. 젊고, 순수했지만 웬만한 사랑 타령에 흔들리지 않는 안정된 시절이었다. 물론 신혼 초라 가끔 사랑싸움 때문에 며칠씩 다툴 때도 있겠지만 그 당시 남편은 금세 미안하다며 사과도 잘했던 것 같다. 이제는 그런 사랑싸움도, 미안함도 필요 없는 척하면 다 아는 사이로 변했지만…. 지금은 결혼 초 투덜투덜 사랑싸움이 왠지 그립기도 하다.   나의 30대 시절, 아이들은 세상에서 엄마가 전부인 것처럼 나에게 의지했다. 13살 이후 사춘기가 와서 하루가 다르게 성숙해진 딸을 보며 낯설어진 때도 있었다. 그러면서 내 30대는 끝이 났던 것 같다.     아이들과 이야기를 하다 말끝에 “그때 해맑았던 너의 모습이 그립다”고 했더니 눈치가 빠른 딸이 “엄마는 언제나 나에게 영원한 36살이야”라고 한다. 딸은 엄마가 좋아하는 말인 걸 알기에 “항상 엄마는 늙지 않는 것 같다”며 립서비스를 해주곤 한다. 미용실에라도 다녀오면 무뚝뚝한 아들도 “오늘은 엄마가 좀 젊어 보이네”라고 한마디 툭 던진다.   교회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봉사를 잠깐 한 적이 있다. 돌잡이 미만 아이들부터 5살 정도까지의 아이들을 돌보는 일이었다. 아이들의 부모는 대부분이 30대였다. 그들을 대하면 마냥 밝고 이쁘게 보여 젊음이 참 부럽기까지 하다.   과거 20대 시절 목욕탕에서 있었던 일이 떠오른다. 옆에 있던 지금의 내 나이쯤 된 분이 수줍어하는 나에게 등을 밀어주겠다고 하시더니 “젊어서 좋겠다”는 말을 하는 것이었다. 그때는 그 말에 담긴 의미를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아마 지금 똑같은 상황이 되면 나도 그분처럼 수줍어하는 아가씨 등을 밀어주며 똑같은 말을 할 것 같다.     가끔 30대의 엄마들이 어린 자녀와 함께 가는 뒷모습을 보면 예전 나의 모습이 오버랩 되며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한다. 순수했던  예전 모습을 찾고 싶어서.     왜 나는 30대를 제대로 즐기지 못했을까? 그때는 폴더용 휴대폰이라 사진도 많이 못 찍었다. 아이들이 주인공이고 나는 매일 애들 뒤꽁무니만 쫓아다녔던 거 같다. 이제 아득한 아기 엄마 때의 시절로 돌아가지는 못하지만, 마음만은 영원한 31세로 살아야겠다.   문득 거울에 보이는 새치 때문에 슬퍼하지 말고, 팔자 주름이 펴지지 않는다고 괴로워하지 말고, 휴대폰 글자 크기를 키운다고 기죽지도 말아야겠다.   앞으로도 ‘포에버 40년, 50년’, 마음 먹은 대로 살면 되는 것 아닌가.  오늘 하루도 즐거운 추억을 만들며 즐겁게 보내야겠다. 이선경 / 독자문예 마당 마음 수필 아기 엄마 사랑싸움 때문 30대의 엄마들

2024-03-14

[귀고리] 삶의 뜨락에서

어느새 고등학생이 된 애들이 키가 부쩍 커지면서부터 유별난 질문을 하거나 전에 없던 엉뚱한 요청을 해 오는 경우가 생기기 시작했다. 딸은 자기도 다른 친구들처럼 귀에 예쁜 귀고리를 하고 다니고 싶다며 부디 엄마가 자기 귀에 구멍을 뚫는 것(pears ear)을 허락해 달라고 했다. 그때 우리 부부는 한참 이일로 인해서 이런저런 고민을 했다. 공연히 성한 몸에다 손을 대는 것이 마땅치 않다는 생각에서다. 그러나 딸은 민감한 사춘기 시기였기에  혹시 이 일로 친구들로부터 소외당할까 하는 생각에 그리하도록 허락한 적이 있다. 그런데 이번엔 아들이 요즈음 유행은 남자들도 귀고리를 한다며 자기도 누나처럼 귀에 구멍을 뚫겠다고 조르기 시작했다. 다 큰 사내아이가 귀에다 보석을 달고 거리를 활보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니 이건 우리가 그저 쉽게 넘어갈 일이 아닌 큰 두통거리로 다가온 것이다.   여자에게는 예쁜 얼굴 모습이, 그리고 남자에게 어깨와 팔에 탄탄한 근육이 매력의 초점이라면 남자가 귀에다 보석장식을 하고 다니는 것은 도대체 이 둘 중에 어디에 속한단 말인지, 아무리 궁리해 보아도 이 모두가 경우에 맞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 세상에는 사람이 사는 곳이면 어디서나 경우에 알맞게 살아야 하는 게 바른길이 아닌가 말이다. 그래서 아들에게 그런 설명을 덧붙여 가며 단호히 너의 귀고리는 안된다고 거절했다. 더는 떼를 쓰지 않기에 우리는 항상 착한 우리 아들을 고맙게 생각했다.   그 당시 내 소아 진료소에 찾아오는 환자의 반수 이상이 남미, 주로 멕시코계 아이들이었다. 남미 사람들은 여자아이가 태어나서 약 1개월이 지나면 거의 모두가 집에서 그 작은 아기 귓밥에 바늘로 구멍을 만들고 작은 금장식을 달아주는 풍습이 있다. 가끔 아기 부모가 내 병원으로 찾아와서 그걸 나에게 해달라고 부탁하지만 나는 그것만은 사양했다. 내 마음속에는 ‘우리의 몸은 거룩한 하나님의 성전(고전 6:19)’이라는 성경 말씀이 깊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러지 않더라도 미국에서 태어난 신생아들에게 첫해에 놔주어야 하는 예방주사가 자그마치 6~7개가 되는데 그 주사를 놔줄 때마다 자지러지게 우는 아기 울음소리를 아기 엄마와 함께 나도 가슴으로 삼켜야 하는 것이 내 직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기에게 다른 어떤 아픔도 더는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해 여름 방학에도 아들은 야구 캠프에 다녀왔다. 약 3주간의 캠프 생활 동안 얼굴은 검게 그을리고 다리도 길어지고 키도 훌쩍 커진 것 같았다. 누렇게 햇볕에 탄 얼굴을 자세히 보다가 그의 귀에 부착된 금속 귀고리를 보게 되었다. 너도 기어이 귀에 구멍을 냈구나! 얼마 동안 나는 몰려오는 실망과 배신감을 참으며 할 말을 잃고 서 있는데 아들은 웃는 표정으로 “엄마 나 내 귀 안 뚫었어요. 이거 봐 이건 앞뒤가 자석이지 않아?” 부모를 실망하게 하지 않으려는 아들의 예쁜 마음을 나는 그날 밤 하나님께 한껏 감사드렸다. 황진수 / 수필가귀고리 뜨락 아기 엄마 아기 부모 아기 울음소리

2022-11-25

[글마당] 만남은 또 다른 만남을

나이가 든 것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 나는 예전엔 무관심했던 노인들이 주인공인 영화를 찾아서 본다. 내 남은 삶을 잘 마무리하기 위해 그들의 삶을 통해 지혜를 얻고 싶어서다.   1960년 1월부터 늦가을 한 해 사이에 일어난 ‘Mrs. Palfrey at the Claremont’(클레어몬트의 팰프리 부인, 2005년) 영화를 봤다.     노인들이 묵고 있는 런던의 한 호텔에서 가족에게 버림받은 노파가 살고 있다. 어느 날 오후 그녀가 길에서 넘어졌다. 지하 아파트에 사는 가난한 소설가 지망생 청년이 그녀가 넘어지는 것을 보고 상처 난 다리를 치료해주고 호텔로 데려다준다. 노파는 청년에게 감사를 표하기 위해 저녁 식사에 초대하여 우정을 쌓아가며 서로는 공통점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젊은 작가 청년은 노파가 가장 좋아하는 소피아 로렌과 리처드 버튼 주연인 ‘Brief Encounter’(짧은 만남, 1974년) 영화를 빌려보기 위해 비디오 가게에 갔다. 그 비디오를 먼저 집어 든 젊은 여자와 맞닥뜨려 또 다른 만남이 생겨나 그 둘은 연인이 된다. 청년은 노파가 클레어몬트 호텔에 대해 그에게 해준 말을 바탕으로 소설 집필을 한다.   그냥 지나치지 않은 작은 친절과 격려가 삶을 성장, 변화시키며 운명을 바꾸는 이야기다.     영화를 본 다음 날 나는 홀푸드 마켓에 들렀다가 집으로 오는 도중 건널목에서 신호등이 바뀌기를 기다렸다. 내 옆에 서 있는 남자아이가 입고 있는 검은 옷이 예사롭지 않다. 그 옆에 서 있는 아기 엄마에게 물었다. 보통 때 같으면 바쁜 젊은 사람 방해하기 싫어 그냥 지나쳤을 텐데 어제 본 영화 영향이었을까?   “아기 옷을 손수 만들었나요?”   “아니요, 한국에서 가져왔어요.”   “어머! 한국 사람이세요.”   “네.”   검은 면 드레스를 입은 엄마의 모습도 예사롭지 않다. 곱다. 단아하다. 세련됐다. 신호등이 파란불로 바뀌었다.   “아기 엄마도 너무 예쁘네요.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볼펜 화가 내 남편의 오프닝 날이었다. 그제 본 그 아기와 엄마 그리고 그녀의 남편이 갤러리 문을 열고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놀랍고 반가웠다.     “저 알아보시겠어요?”   “누구신지…?”   “어퍼웨스트 건널목에서 아기 옷이 하도 예뻐서 물어봤던 사람이에요.”   “어머 어떻게 여기에 오셨어요?”   “제 남편 개인전이에요.”   “어머머 이런 인연이.” 이수임 / 화가·맨해튼글마당 아기 엄마 어퍼웨스트 건널목 소설가 지망생

2022-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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